[전북교총 오준영 회장 기고] 교사는 직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다(전라일보 2025. 7. 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북교총 댓글 0건 조회 61회 작성일 25-07-03 14:49본문
오준영 전북특별자치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 전국 시도교총회장 협의회장
“좋은 교사는 없고, 좋은 직장만 있다.”
얼마 전 정성호 한국정부회계학회장이 늘봄학교 사태를 다룬 칼럼에서 남긴 표현이다. 교육부가 극우 민간단체에 위탁한 프로그램을 방치하고, 지방교육청은 책임을 떠넘겼으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행정 실패였다. 그런데도 그는 교사들이 참여를 꺼린 책임이 크다며, 이처럼 냉소적인 표현을 남겼다. 정작 정책을 설계한 주체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비판은 희미했다. 잘못된 구조와 위태로운 집행을 지적한 교사들의 우려는 ‘회피’로 폄하됐다. 이 말 한마디에 담긴 인식은 교사를 단지 ‘공무원’으로만, 교육을 단순한 ‘서비스’로만 바라보는 관료적 시각을 드러낸다.
교사는 직장인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키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교육은 ‘직장’이 아닌 ‘사명’으로 지켜지는 공간이다. 교사는 아이를 향한 눈빛과 손끝으로 일하고, 아이의 울음과 웃음에 가장 민감한 존재다. 교사의 한마디는 아이의 자존감을 세우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교사의 이름 아래,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 교사들을 향해 “좋은 교사는 없다”는 말은, 교사의 존재를 부정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가볍게 여기는 말이다. 교사의 열정과 진심은 통계로 환산되지 않지만, 그 교육적 감화는 어떤 제도보다 강하다. 교사를 행정의 말단으로만 대하는 생각은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교사의 전문성과 헌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교육현장에서 과연 아이들은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늘봄 사태의 본질은 구조적 책임 회피다
늘봄학교 사태의 본질은 구조적 책임 회피다. 중앙은 설계만 했고, 예산은 지방이 떠안았으며, 정책이 실패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지방교육청은 형식적 공모로 위탁기관을 선정했고, 프로그램의 내용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난은 현장 교사에게 돌아갔다. 참여를 꺼낸 교사들의 목소리는 안전과 책임을 위한 정당한 문제제기였지만, 행정은 이를 ‘협조 부족’으로 몰았다. 교육 실패를 교사 탓으로 돌리는 프레임은, 언제나 손쉬운 희생양을 찾는 방식이다. 그것이야말로 교육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나쁜 방식이다. 누구보다 아이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를 비난하는 대신, 왜 교사들이 참여를 꺼낼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맥락을 함께 짚어야 했다. 조직은 있으나 기능이 없고, 지침은 내려오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구조 개편이 필요한 이유다.
‘좋은 교사’가 있는 교실을 지켜야 한다
교사는 직장인이 아니다. 학교는 직장이 아니라 공동체다. ‘좋은 교사는 없다’는 말은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한 날카로운 표현이라기보다, 자신의 무책임을 감추기 위한 방패로 읽힌다.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다. 좋은 교사는 있다. 오늘도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작은 변화에 먼저 반응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먼저 달려가고, 외로워 보이면 툭툭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 그런 교사들이 오늘도 교실의 온도를 지키고 있다. 세상의 빛은 늘 조용히 존재한다. 현장의 교사들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어야 교육이 바로 선다. 정책은 교사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하며,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구조에서 교육의 미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좋은 직장’이 아니라, ‘좋은 교사’를 지지하는 교육 구조다.
출처 : 전라일보(http://www.jeollailbo.com)
“좋은 교사는 없고, 좋은 직장만 있다.”
얼마 전 정성호 한국정부회계학회장이 늘봄학교 사태를 다룬 칼럼에서 남긴 표현이다. 교육부가 극우 민간단체에 위탁한 프로그램을 방치하고, 지방교육청은 책임을 떠넘겼으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행정 실패였다. 그런데도 그는 교사들이 참여를 꺼린 책임이 크다며, 이처럼 냉소적인 표현을 남겼다. 정작 정책을 설계한 주체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비판은 희미했다. 잘못된 구조와 위태로운 집행을 지적한 교사들의 우려는 ‘회피’로 폄하됐다. 이 말 한마디에 담긴 인식은 교사를 단지 ‘공무원’으로만, 교육을 단순한 ‘서비스’로만 바라보는 관료적 시각을 드러낸다.
교사는 직장인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키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교육은 ‘직장’이 아닌 ‘사명’으로 지켜지는 공간이다. 교사는 아이를 향한 눈빛과 손끝으로 일하고, 아이의 울음과 웃음에 가장 민감한 존재다. 교사의 한마디는 아이의 자존감을 세우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교사의 이름 아래,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 교사들을 향해 “좋은 교사는 없다”는 말은, 교사의 존재를 부정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가볍게 여기는 말이다. 교사의 열정과 진심은 통계로 환산되지 않지만, 그 교육적 감화는 어떤 제도보다 강하다. 교사를 행정의 말단으로만 대하는 생각은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교사의 전문성과 헌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교육현장에서 과연 아이들은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늘봄 사태의 본질은 구조적 책임 회피다
늘봄학교 사태의 본질은 구조적 책임 회피다. 중앙은 설계만 했고, 예산은 지방이 떠안았으며, 정책이 실패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지방교육청은 형식적 공모로 위탁기관을 선정했고, 프로그램의 내용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난은 현장 교사에게 돌아갔다. 참여를 꺼낸 교사들의 목소리는 안전과 책임을 위한 정당한 문제제기였지만, 행정은 이를 ‘협조 부족’으로 몰았다. 교육 실패를 교사 탓으로 돌리는 프레임은, 언제나 손쉬운 희생양을 찾는 방식이다. 그것이야말로 교육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나쁜 방식이다. 누구보다 아이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를 비난하는 대신, 왜 교사들이 참여를 꺼낼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맥락을 함께 짚어야 했다. 조직은 있으나 기능이 없고, 지침은 내려오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구조 개편이 필요한 이유다.
‘좋은 교사’가 있는 교실을 지켜야 한다
교사는 직장인이 아니다. 학교는 직장이 아니라 공동체다. ‘좋은 교사는 없다’는 말은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한 날카로운 표현이라기보다, 자신의 무책임을 감추기 위한 방패로 읽힌다.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다. 좋은 교사는 있다. 오늘도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작은 변화에 먼저 반응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먼저 달려가고, 외로워 보이면 툭툭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 그런 교사들이 오늘도 교실의 온도를 지키고 있다. 세상의 빛은 늘 조용히 존재한다. 현장의 교사들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어야 교육이 바로 선다. 정책은 교사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하며,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구조에서 교육의 미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좋은 직장’이 아니라, ‘좋은 교사’를 지지하는 교육 구조다.
출처 : 전라일보(http://www.jeollailbo.com)
- 이전글2025 전북교총회장배 전북교육가족 골프대회 조편성 안내(기준일: 2025. 7. 15.) 25.07.08
- 다음글故 제주 교사 추모 및 교권보호대책 요구 전국 교원 집회, 버스 이용 희망 조사(전주출발) 25.06.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